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헌 국회의원 선거 (문단 편집) == 여담 == * 위에서 서술했듯이 이때는 아직 정당의 개념이 확립되지 않아 정당이 난립했다. 그 지역의 유력자들이 창당하거나, 무소속 개인 출마자가 창당하거나 한 고을을 중심으로 창당한 정당이 많았다. 당명을 밥 먹듯이 갈아치우는 현재 한국의 정당들이 저 당명들 중 하나를 갖다 써도 될 정도였다. * 제헌 의원중 가장 이른 나이에 당선된 이는 [[배중혁]] 으로 26년 3개월의 나이로 당선되었다. 반면 가장 늦은 나이에 당선된 이는 [[이승만]] 으로 73년 2개월의 나이로 당선되었다. * 2008년 2월 25일[* 공교롭게도 이 날은 [[이명박]] 대통령이 취임한 날이다.] 제헌 국회의원의 마지막 생존자인[* 북한에 있는 납북 의원까지 포함하면 [[최태규]]가 마지막이다.] 김인식[* 선거구는 [[옹진군(황해남도)|옹진군]] 을이다. 이후 [[6.25 전쟁]]을 거치면서 현재는 [[연평도]]만 남았고, 나머지는 모두 [[북한]] 치하로 넘어갔다.]씨가 죽으며 제헌 국회의원들은 모두 별세하였다. * 당시 문맹자가 하도 많다보니 후보들이 투표하러 가는 사람들에게 '''기호 1번, 기호 2번 찍으세요라고 하지 않고 작대기 하나(기호 1번), 작대기 2개(기호 2번) 찍어 주세요라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.''' * 북한에서 스스로 선거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비밀투표가 아닌 거수기를 위한 찬반위주의 공개투표이며, 100%에 육박하는 수치를 자랑한다. 이러한 행위로 독재체제를 강화하고 국민을 서로 감시하는 도구로 이용된다. 그래서 [[흑백투표]]는 북한의 투표방식(흑백투표함)을 상징하는 용어가 되었다. * [[북한]]에서는 이 선거를 망국단선(亡國單選)이라고 부르며 '미제가 함대와 전투기, 총으로 무장한 군인과 경찰들을 배치하고 국민들의 통행을 사실상 금지하여 남조선 전체를 '한 개의 큰 감옥'으로 만들고는 선거날에는 경찰과 '향보단원'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투표를 강요하고는 이를 거절하면 그 자리에서 구타, 살해해 선거 기간 동안 416명이 살해되고 558명이 다쳤다' '[[4.3 사건]]은 '제주도의 애국적 인민들'이 일제히 궐기하여 '망국단선'의 입후보자들을 '처단'했다' '선거날의 서울을 목격한 미 UP통신 기자까지도 "이날 서울에서 웃는 사람은 어린아이들 뿐이였다"고 개탄했다'는 등의 황당한 [[역사왜곡]]을 했다.[* 이는 [[1957년]]에 북한이 발간한 '조선통사'라는 책에 나온 정보이다.] [[https://blog.naver.com/minjune98/222503259720|#]] * [[4.3 사태]]의 여파로 제주도 선거구 세 곳의 선거 관련 기록이 소실되었다. 그나마 북제주군 갑, 을의 두 선거구는 1948년에 투표율이 50%에 미달하면서 무효가 되어 1949년에 치른 재선거의 자료는 남아있지만, 1948년에 선거를 정상적으로 치른 남제주군 선거구에서는 모든 자료가 사라지고 확인되는 정보는 언론사의 보도로 남아있는 후보자 세 명의 이름과 [[https://newslibrary.naver.com/viewer/index.naver?articleId=1948051900329202015&editNo=1&printCount=1&publishDate=1948-05-19&officeId=00032&pageNo=2&printNo=502&publishType=00020|1948년 5월 19일 경향신문 2면]] 기사를 통해 확인되는 당선자 [[오용국]]의 득표수 16,540표 뿐이다. * [[김구]]와 [[김규식]], 그리고 [[남북연석회의|남북 협상]]에 참가했던 모든 대표들은 [[공산주의]]에 대한 깊은 실망을 안고 5월 4일 [[평양]]을 떠나 [[서울]]로 향하는 여정에 올랐다. 평양에서의 협상이 실패한 후에도 김구와 김규식은 이전과 같이 [[유엔]] 감시하에서 실시될 [[남한]] 단독 선거에 반대하고, 추종자에 대해서는 이 선거를 [[보이콧]]하라고 요구하였다.[*a 許政, 《雩南 李承晩》, 1970, 太極出版社p, p. 253-257][br][br]이러한 [[뉴스]]는 급속히 전해져서 언론은 이 보이콧이 5월 10일에 실시할 예정인 [[총선거]]를 무효화하는 것이라고 보도하였다. [[남로당]]들도 이 [[선거]]를 보이콧 할 작정이라고 언명하였다. 이런 상황속에서 [[이승만]]은 다음과 같은 담화를 발표하였다.[*a] >아직도 총선거에 대하여 이해를 잘 못하는 [[동포]]들이 있는듯 한데 [[임금|임군]]이 있는 시대에는 임군이 모든 국사를 다스려 왔으나, [[민주주의]] [[국가]]에 있어서는 민의대로 [[대표]]를 선출하여 그들로 하여금 [[국회]]를 구성하여 [[헌법|국법]]을 만들고 [[통치|치국]]을 하는 것이다. 이리하여 국권을 회복한다면 우리 일을 간섭할 리도 없고 간섭을 하려고 하더라도 간섭을 받을 [[한인]]은 없을 것이다. 그리고 선거를 간섭한다는 것은 특히 [[공산주의자]]들이 [[자유]]를 구속하고 공산파에만 투표하도록 조작하려는 것을 감시하려는 것이다. 그리고 여러분들은 자기 [[정파]]에만 [[투표]]하라고 권하는 [[정당]]을 주의하시오. > >우리는 정식적으로 법리적으로 또 대규모적으로 이 선거를 시행해야 한다. 지금 남들은 우리를 40년간 [[정치]]를 못해본 [[국민]]이라 능력이 없다는 욕스런 말을 하는 것이다. 그러므로 우리는 금차 선거를 모범적으로 실시하여 우리의 면목을 회복시켜야 하겠다. > >그리고 오늘날 우리나라 실정을 보면 한편에서는 [[독립]]을 찾겠다고 하는데, 다른 한편에서는 이것을 반대하고 있다. 이 때 또 [[좌우합작운동|중간파]]에는 [[신탁통치 오보사건|독립을 안 해도 좋고 해도 좋다는]] 듯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. 그리고 또 [[김구|일부]]에서는 남북 통일 선거가 아니면 [[대의|대의 명분]]이 서지 않는다는 구실로 금차 선거를 반대하나, 그러면 '''남한 선거만 원하는 사람은 누가 있단 말인가. [[북한]]이 막혀 통일 선거를 할 수 없게 되었다해서 이것도 저것도 말고 내버려 두자는 말인가.''' [[흑백논리|이런 대의 명분은 공산화를 기도하는 방법밖에는 되지 않는 것이다.]] > >⋯ 이번 선거에 실패한다면 방해하려는 자들에게 언질을 주게 되며, 우리 국운은 실로 한심스럽게 되고 말 것이다. 그리고 무엇보다도 후보자 난립을 주의해 주시오. [[분류:제헌 국회의원 선거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